인도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슬픈 눈물 ‘스리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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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Ceylon), 셀렌디브(Serendib), 인도의 눈물(Teardrop of India), 빛나는 작은섬(Resplendent Isle), 다르마 섬(Island of Dharma), 동양의 진주(Pearl of the Orient) 등 스리랑카를 일컫는 수많은 수식어은 스리랑카의 풍요와 아름다움, 독특한 매력을 대변하는 말이다.

인도 남부의 인도양 해상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면적은 6만 5699㎢이고 인구는 1,810만 명(1997년 기준)으로서 이 중 280만 명이 수도 콜롬보(Colombo)에 거주한다. 주요 인종으로는 싱할라족 74%, 타밀족 18%, 무어족 7%이다. 헌법상의 공용어는 타밀어인데, 일상에서는 영어가 통용되고 있으며 싱할라어도 사용된다. 섬으로 이뤄진 스리랑카는 북위 3도, 동경 82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인도에서 남동쪽으로 32km떨어져 있다. 국토 면적이 65,610 ㎢에 1,585km에 달하는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열대 해변, 역사 유적지, 우림, 화려한 폭포 등 멋진 경관으로 방문객을 매혹시킨다. 스리랑카은 거대한 인도-아대륙의 남쪽 끝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거대한 눈물모양을 지니고 있다. 인도와 스리랑카사이에는 '애덤스 브리지(Adam's Bridge)'으로 알려진 징검다리격의 산호섬들이 50km의 좁은 포크해협(Palk Strait)을 이어주고 있다. 스리랑카는 길이 350km, 최대폭 180km으로, 아일랜드 정도 크기의 섬이다. 섬의 남부는 아름답고 무성한 산림이 형성되어 있고, 섬 북부는 남부산악지역에서 자프나(Jaffna ) 반도까지 거대한 평지를 이루고 있다. 2,524m의 피두루타라가라 산(Mt. Pidurutalagala)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누와라 엘리야부근에 있고, 가장 큰 강은 중앙에서부터 이어지는 마하웰이(Mahaweli)강으로 트린코마리(Trincomalee)를 통해 인도양으로 뻗어져 있다. 남서쪽, 남쪽, 남동쪽해안에는 최고의 해변이 자리 잡고 있다.

 

불치사
캔디 시가지 동쪽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는 부처의 치사리를 모셔진 불교사원으로, 유명한 불교성지이다. 캔디가 영국에 양도하는 캔디약정이 맺어진 1815년 바로 직전에 건립된 “파띠리푸와(Pattirippuwa)”라는 8각형탑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캔디왕조의 수도로서 캔디가 도시로서 발전하게 되었던 시기,15세기 1473~1511년에 통치했던 세나삼마타 위크레마바후(Senasammata Wickremabahu)왕 이후, 혼란한 정세를 바로 잡기 위해 위마라드하마수리야 1세(Wimaladharmasuriya I)로 알려진 코나뿌 반다라(Konappu Bandara)는 델가무와(Delgamuwa)에서 이곳 캔디로 부처의 치사리를 들여와 사원을 짓고 그곳에 모시게 되면서 통합된 불교를 가지게 되었다. 1604년 그가 죽고, 영국이 마지막 캔디왕을 잡아갔던 1815년사이 센카다가라와 그 주변지역 메다 마하 누와라(Meda Maha Nuwara), 쿤다살레(Kundasale), 한구란케타(Hanguranketa)등지을 토대로하는 7명의 왕이 나왔다. 달라다 말리가와에 있는 8각탑과 그림같은 캔디호수는 캔디왕조의 마지막 왕인 스리 위크레마 라자싱헤(King Sri Wickrema Rajasinghe)때 건립되었다. 스리 위크레마 라자싱헤왕이 영국군에 의해 남인도로 추방당함으로서, 캔디왕조는 역사속으로 묻히게 된다. 하루에 세 번 거행되는 푸자(Pooja)때에만 참배객이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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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나웰라 코끼리 고아원
1975년에 야생동물보호국에 의해, 람부카나(Rambukkana)에 있는 마하 오야강(Maha Oya River)변, 25에이크에 달하는 코코넛 수목림일대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피나웰라 코끼리 고아원은 대부분의 어미코끼리는 병들어 죽거나, 밀엽꾼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경우로 홀로 버려져 거친 밀림속에서 길잃은 약 60여 마리의 어린 코끼리를 보금자리이다. 이곳에서는 먹이를 주고, 거친 야생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돌보고 있다. 먹이를 먹는 시간대에 이곳을 찾으면, 스스로 먹이를 먹지 못하는 코끼리에게 우유병으로 먹이는 장면도 있고, 또한 매일 이뤄지는 코끼들의 목욕장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도 있다. 10:00 ~ 12:00, 14:00 ~ 16:00, 하루 두번 코끼리들은 목욕을 한다. 원래, 윌파투 국립공원(Wilpattu National Park)내에 있었으나, 관광지 벤토타(Bentota)로 옮겨진 후, 데히와라 동물원(Dehiwala Zoo)으로 보내졌다. 다시 동물원에서 핀나웰라로 되돌아 왔다. 코끼리 고아원은 5마리의 어린코끼리(Vijaya, Neela, Kumari, Anusha, Mathalie, Komali)를 데리고 이전하였다. 그들은 국내외 관광객들로 부터 얻어지는 수입금으로 코끼리 고아원을 유지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1978년 핀나웰라 코끼리 야생동물보호국에서 국립 동물공원관리국(National Zoological Gardens)로 넘겨지게 되었고, 보육 프로그램이 1982년에 수립되었다. 핀나웰라에서의 이러한 시도는 야생 자연조건에서 제한된 방법으로 이뤄졌다. 동물들이 낮에 자유롭게 다닐수 있도록 보호구조물이 만들어졌다. 국립동물공원관리국은 케갈레와-람부카나 도로변, 케갈레(Kegalle)에서 13km, 람부카나에서 90km 떨어진 핀나웰라에 어린 코끼리를 위해 고아원을 수립하기 시작하였다.
 
폴론나루와
콜롬보에서 216킬로미터, 시기리아에서 66킬로미터, 아누라다푸라에서 103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폴론나루와는 화려했던 중세시대(11세기~12세기) 스리랑카의 수도였다. 11세기 초 남인도 타밀족의 침입으로 타격을 받은 아누라다푸라에서 포론나루와로 수도를 옮겼다. 그러나 오늘날 이 옛 도읍에 남아있는 유적은주로 위자야 바후 1세와 프라크라마 바후 1세 등 두왕때의 것으로, 사원과 수도원, 그외 많은 건축물 등의 12세기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스리랑카 중세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잘 보여준다.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쌓여 있고, 공원과 정원이 많이 있으며 많은 유적들은 녹음속에 우뚝 서 있다. 근처에는 1000곳이상의 관개용 저수지가 있는데, 그 중에 “프라크라마의 바다”라는 뜻을 가진 “프라크라마 사무드”라는 바다와 같이 크다. 포론나루와의 유적들은 남북으로 일렬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관광하는데 무척 편리하다. 제일 남쪽에는 방형의 정원을 둘러 싼 건물군과 프라크라마 마후의 궁전, 파비리온, 왕실의 목욕탕 들이 있다. 궁전은 1층의 대홀이 200여 평 정도 되며 처음에는 7층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2층만 남아 있다. 북쪽 약 1.5킬로미터 정도를 가면, 탕카디파카위하라야가 있는데, 300여 평의 거대한 법당은 프라크라마 바후가 건립한 것이며, 현존하고 있는 높이 16.8미터의 벽(지붕은 무너져 없어 졌음)만이 과거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다시 북쪽으로 45킬로미터가면 가장 귀중하고, 소작한 기념비인 갈위하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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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불라
“바위”라는 뜻에 “담바(Damba)”와 “샘”이라는 뜻의 “율라(Ulla)”가 합쳐서 만들어진 말로 담불라는 시기리야에서 약 1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180미터로 홀로 우뚝서있는 거대한 바위에 갖가지 사원과 탑을 만들어 스리랑카의 불심을 엿볼수 있다. 여기에는 B.C. 1세기때 만들어진 유명한 바위사원이 있는데, 현지인들은 “담불라 가라”라고 부르는 사원이 바위산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스리랑카의 불교 유적지는 누구나 다 맨발로 다니게 되어 있는데, 절문을 신을 벗고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동굴을 따라 복도가 있고 5개의 동굴이 나란히 있다. 5개의 동굴을 통해 사원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첫 번째 동굴은 약 14미터정도의 자연석에 새겨 놓은 열반에 든 와불상이 있다. 불교에 연관되는 여러 그림들이 있다. 벽에는 15세기에서 18세기사이에 그려진 프레스코(Fresco)형식의 다양한 그림들이 남아 있다. 가장 잘 만들어졌으면서도 가장 큰, 2번째 동굴에는 다양한 신들의 조각상과 더불어 수많은 불상이 보존되어지고 있다. 천장 또한 프레스코형식으로 부처의 삶을 그려 놓았으며, 이 벽화로서 신할라인들의 역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이 동굴은 인도의 아잔타 석굴처럼 동굴을 파내고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바위산의 자연동굴에 스님들이 머무르면서 고쳐 나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암벽에 흠을 파서 빗물이 동굴내로 흘러들지 못하게 하고 동굴내의 바닥은 고르게 정비하여 굴속은 구서구석 하얀 옻칠을 하여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벽화의 색이 바래면 그 위에 또 다시 새로운 그림을 그렸는데 원래 있던 그림의 무늬를 그대로 활용한 경우도 있고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린 경우도 있다. 불상을 포함하여 벽도 전면이 채색되었으며, 그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조는 아직까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미힌탈레
아누라다푸라동쪽 11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미힌탈레는 바위언덕으로, 스리랑카의 불교의 요람지이다. B.C. 247년에 데바남피야티싸(Devanampiyatissa)왕이 아소카왕의 아들 마힌다(Mahinda)왕자로부터 불교를 전승받은 곳으로서, 데바남피야티싸왕은 새로운 종교인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미힌탈레(마힌다의 언덕)은 곧 불교 전파의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미힌달레의 정상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1840개의 계단을 밟아야 한다. 5미터의 폭 양옆은 꽃나무가 심어져 있는 계단은 Bhathika Abhaya (22 B.C.~7 A.D.)왕때 만들어진 것으로, 포손(Poson; 5,6월경 만월시기)동안에는 언덕과 계단은 거대한 백색으로 장식하여 전역에서 이곳 미힌탈레로 오는 불교순례자들을 맞이하게 된다.
조 민 전문기자